호스피스 병동
순천은 내 아이들이 튼실하게 성장한 곳이고,
40대의  내 삶이 무르익은 곳이며, 아이들 아버지가  삶을 끝낸 곳이기도 하다. 
그리고  성가롤로병원의 호스피스 병동은 지난 4년여 동안 눈길조차도 줄 수 없던 곳이다. 
어쩌다 들려야 할 때는 온몸이 저려서 오래 머물수가 없었다. 
오늘 내리는 비 때문이었는지..그곳에 올라가서 수녀님과 긴 이야기를 나누웠다. 
호스피스 봉사자교육 기간이라서 자연스럽게 사별가족의 얘기가 나왔다.
다아 쏟아내버리고 싶어도 맘속 깊은 곳으로 숨어들어 딱딱하게 오므라드는 것들이
마른 풀섶사이로 올라오는 새싹이기라도 한 것처럼 드러나기도했다.
잎이 펴지고 줄기가 바로서고 꽃망울이 맺히기까지는 아직도,
아직도 많은 햇빛과 물과 바람이 필요하리라 생각하지만
그동안의  막힘들이 조금씩 풀려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그 큰 슬픔이 언젠가는 쓰일 곳이 있으리라고.
그래서 더 많이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
담담하게 얘기하시든 노사제의 기도같은 말씀들이
이제는 서서히 내 속뜰에서  씨앗으로 영글기를 염원한다.
by 이화 | 2006/04/04 19:52 | 트랙백(1)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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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일다의 블로그 소통 at 2009/03/19 14:52

제목 : 말기환자 위한 호스피스 제도 보장돼야
국회에 제출된 존엄사 법안을 통해 존엄사 논의의 핵심쟁점인 ‘의료집착적 행위’의 문제에 대해 짚어보는 한편, 환자의 자기결정권과 진정성을 둘러싼 다양한 쟁점들을 살펴보고, 나아가 호스피스와 적극적 안락사에 이르는 논의를 지피고자 한다. 필자 이경신님은 현대의학의 발달에 따라 변화하고 있는 죽음의 개념과 양상을 연구하며, ‘죽음’의 문제를 통해 삶을 바라보는 철학연구를 지속해오고 있다. -편집자 주 존엄사 법안, ‘적극적 안락사’ 금지하고 있어 ......more

Commented by 덧말제이 at 2006/04/04 20:50
따스한 봄햇살, 이화님 맘에도 끌어다드리고 싶네요.
Commented by 비단풀 at 2006/04/04 22:49
이런 구절을 읽었습니다. 두번째 읽은 책인데요;

"사람은 꼭 자기만큼만 살 수 있다고 한다. 자기만큼 기뻐하고 자기만큼 슬퍼하고 자기만큼 보고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어찌 삶뿐이겠는가, 죽음 또한 그러할 것이다. 아니, 죽음이야말로 꼭 자기만큼만 죽을 수 있는 실존의 마당이 될 것이다."

허수경 시인은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하고, 털어냈죠.
'속뜰'에 벌과 나비 금세 꼬일 것이라 믿습니다.
Commented by 이화 at 2006/04/05 09:56
덧말제이/ 비단풀/ 햇살같은 마음들을 먼저 받아 안았습니다. 살면서 무엇이나 스스로 체험하고 살아내지 않은 것들에 대한 두려움은 늘 있었지요.
슬픔도..그 나름의 발달과정(?)이 있음을 어제 호스피스병동의 수녀님과 서로가 공감하면서 깊은 얘기들을 했습니다. 제 안에서 자라기 시작한 슬픔이 이제는 걸음마를 시작하는 돌지난 아이정도나 되었을지 모른다고 함께 웃기도 했구요. 더구나 나만의 것이 아니고 내 가족, 내아이들의 것도
마찬가지임을 아파하기도 헀습니다. 아무쪼록 무리 모두들에게 좋은 거름이 돠어지기를 원합니다.
Commented by yaalll at 2006/04/05 11:36
이화님의 마음뜰의 씨앗과 햇볕을 상상하며 생각합니다. 슬픔이 없이 어찌 살겠느냐만 누구에게든 큰 슬픔을 주지는 말아야지......
Commented by 바람 at 2006/04/08 09:28
그 큰 슬픔이 언젠가는 쓰일 곳이 있으리라고. 그래서 더 많이 슬퍼해야 하는지도 모른다고,,,,,,깊이 공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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