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내 엽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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삽이월/ 25 (까치내 마지막 엽서)

어젯밤 자정 무렵부터 눈이 내렸었다. 
펑펑 내리다가 이슬비처럼 내리기를 반복하는 걸 바라보느라 잠을 놓쳤었다.  
오늘은 낮미사를 드리고 성탄 잔치마당에서 점심도 먹고 하저마을에도 갔었다. 
반겨주시는 도향 사장님 부부께서 군고구마를 구워주시고 
자연 염색으로 빛고운 손수건을 성탄 선물로 주셔서 낼름 받아왔다. 

성탄 미사를 제대로 드린 것도,  잔치마당에 어울려본 것도, 돌아보니 10년 만인 것 같다. 
요즘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마음도 크지만 이제는 누가 보아도 안정된 모습이라고 얘기하고, 
안부를 묻는 지인들에게도 그렇게 편하게 대답한다. 
짧지 않는 세월이나 그 세월이 있었기에 지금이 있음을 순순히 수긍하는 것이다. 
앞으로 나에게 남은 시간들이야 생의 끝자락이 될 수 밖에 없겠지만, 그래서 더욱 밝게 살고 싶다. 
그 누구의 삶도 "맑고 밝은 마음"으로 산다면 더 바랄게 없다는 것이 한결같은 나의 믿음이다. 
새해를 맞을 때마다 항상 마음을 추스르곤 했지만, 이번에는  다시 한 번 더 추스른다.

그리고, 오늘 이 엽서가 "까치내 엽서"의 마지막 글이 될 것 같다. 
엄마같지 않는 엄마를  묵묵히 기다려준 아이들과 
변함없는 사랑으로 지켜주고 다둑여주신 고마운 지인들과
보잘것없는 얼음집을 잊지않고 늘 찾아와 주시고  
이곳을 통해서 좋은 인연을 맺어온 모든 분들께 
고개숙여 고마움과 사랑을 전한다.


소녀와 할머니

성탄과 새해 인사를 문자로 보내고 받는 시대다.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이제는 번거롭지 않고 그런대로 반갑다. 
그렇게 받은 문자 중에 고민(?)스러운 내용이 있어 옮겨 본다.
"소녀시절의 어여쁨과 청순함을 고이고이 간직하시고 
새해에도 복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게 오래오래 행복하세요." 
솔직하게 말한다면, 처음에는 가슴이 뭉클하면서 고마운 마음이었는데 
갑자기 "어여쁨과 청순함"이라는 글자 하나하나가 분리되어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들이 보내준 영양크림을 날마다 발라도 거울 속에는 까칠한 할머니가 있을 뿐인데,
겉 사람이든 속 사람이든 어찌 어여쁨과 청순함이 가당치나 하겠는가.
참으로 아득하고 아련한 이야기다. 정녕 그런 시절이 있기나 했는지. 
그 사람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떤 생각을 할까?
언젠가 만나게 되면 세월의 덧없음을 함께 웃어야 할 거 같다. 

따끈따끈한...

서울에서 다섯시간 버스를 타고, 다시 택시나 군내버스를 타고 들어오는 
까치내 박산마을에 방금 구워낸 빵처럼 따끈따끈한 책이 배달되었다. 
어느 출판사 "미모의 두 처자"가 만든 책이다. 그 사람들의 책이 만들어 질때마다 
나는 아무런 대가도 없이 호강하듯 기쁨에 겨워한다. 고맙고 미안하다.


십이월/ 23

* 창가에 원탁을 치우고 바닥에 작은 이불을 깔았다. 
겨울에는 벽에 등을 기댄 채 이불 속에 발을 넣고 앉아 있으면 왠지 더 정겹다. 
무릎 때문에 침대와 식탁을 사용하고 창가에 탁자를 놓긴 해도, 
내 마음이나 내 몸이 기억하는 것은 그런 것들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커다란 솜이불에서 할머니와 언니들과 함께 잠이 들고 
둥근 상 위에서 밥을 먹던 어린 날의 추억은 
지워질 수 없는 무늬로 끝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
바닥에 앉아 벽에 등을 기대도 하늘이 보여서 좋다. 

*요즘은 책읽는 시간이 더 많아졌다. 특별하게 하는 것도 없으면서 읽을 책이 밀려있고
다시 보고 싶은 책도 많다. 글씨야 재미있어서 쓰는 것 뿐인데, 가끔은 하루종일 붙잡고 있다 보면 
아무리 취미로 하더라도 한심하기 그지없다. 아직 어떤 한계를 느낄 단계도 아니면서 
가당찮게 아까운 붓을 부러뜨릴까 봐 지레 겁이 나서 싱겁게 웃기도 한다. 

* 오늘의 묵상 글에 "말문이 막힌다는 것은 침묵하라는 뜻"이라는 구절이 있다.




"춘희"씨와 함께

까치내에서 사귄 "춘희"씨는 정말 착하고 순박한 여자사람 이다. 
내가 자전거를 배운 후부터 가끔 만나 함께 들길을 달린다. 
무언가 궁금하면 꼬치꼬치 깨묻는 모습이나 부엌에서 조물조물 음식을 만들어내면 
옛날 어머니가 해주시던 맛이 난다.  춘희 씨는 사위가 둘이 있고
며느리는 외아들이기 때문에 둘도 없는 귀한 며느리라고 늘 얘기한다. 
친정엄마를 일찍 여윈 며느리가 짠해서 첫아이를 낳을 때는 많이 울었다고 했다. 
며느리가 손자들을 데리고 집에 오면 친정에 오는 것처럼 늦게까지 자게 하고 
시어머니보다는  내 딸이다 생각하고 친정엄마처럼 해주고 싶다고 했다. 
마음의 진정성이 충분히 느껴지고 그런 마음에도 믿음이 간다. 
그런데, 춘희씨의 딸들은 아무리 잘 해주어도 시어머니는 항상 불편하고 어려우니까 
자주 가지 말고 마음을 비우라고 한단다.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일 뿐이라고. 
어쩌면 맞는 얘기라고 생각한다. 굳이 부정할 필요도 없으리라.
그냥, 시어머니는 시어머니의 위치에서, 며느리는 며느리의 위치에서
서로 배려하면서 사노라면 세월이 얹어주는 미운 정 고운 정까지 자연스럽게 베일 것이다. 

우리는 웃으면서 정답 같은 결론을 내렸다.
친정어머니가 되려 하지 말고 먼저 시어머니로서 잘하자고. 
시어머니가 어찌 친정어머니가 되며, 며느리가 어찌 딸이 되겠는가 라고.  
시어머니들이 친정어머니가 되고 싶다는 것은 꿈이라고.
며느리 역시 시어머니의 딸이 되겠다는 꿈이 깨지고 나면 허망할 것이라고.
줄 수 없는 것을 주겠다는 것도, 받을 수 없는 것을 받겠다는 것도 허황된 마음일 뿐이라고.
참 좋은 며느리. 참 좋은 사위. 참 좋은 시부모. 참 좋은 장인.장모로 변함없이 정성을 다 한다면 
딸같은 며느리, 아들같은 사위, 친정엄마같은 시어머니로 느껴지고도 남을 것이라고.
그렇게 살다 보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뗄 수 없는 깊은 정으로 맺어져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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